지역인물

정창영 전 코레일 사장을 만나다

긍정의 뉴스 2013. 8. 20. 12:34

정창영 코레일 전 사랑과 함께 하였습니다.
행정고시(24회)에 합격하여 경상북도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창영 전 사장은 감사원 사무총장, 국내 최대 공기업인 코레인 사장을 역임하면서 국정과 경영을 두루 경험한 자랑스러운 구미인입니다.


'감사는 컨설팅이다'는 감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으며 감사원의 아이디어 뱅크.개척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전통 감사맨이지만, 3만 5천여명의 공기업을 이끈 경영자의 역할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그 동안 쌓아온 국정에 대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네크웍을 나라와 고향에 바치고 싶다는 정창영 전 사장의 라이프 스토리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한편 정창영 사장은 국토교통부와 철도경쟁체제 도입문제를 두고 마찰을 일으킨 끝에 2013년 5월 중순 사표를 제출했으며 “철도는 여러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해 있는 네트워크 산업이며 국민에게 직접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사업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부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형성, 철도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해 달라”고 밝혔으며 지난해 2월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 지난해 5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3500억원대로 감축하고 2014년 말 영업흑자 달성을 눈앞에 두는 등 경영난 해소에 앞장섰다.



1) 정창영 사장님의 뿌리가 구미시 도개면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산과 고향 어른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 본적이 도개면입니다.. 선산에는 조부모님과 아버님의 선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대구에서 조그마한 시계포를 운영하셨기에 저는 대구에서 성장했지만 조부모님께서 도개면에 토박이로 사셨기 때문에 방학때면 할아버지댁에서 보냈습니다. 할아버지와 금오산도 같이 가고 낙동강에서 낚시대로 물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개초등학교에 방송장비를 기증하시고, 동네 저수지 공사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연 덕분인지 제가 감사원 사무총장이 되었을 때와 코레일 사장에 취임했을 때 고향 어르신들이 도개면민 전체의 이름으로 고향 거리에 축하 현수막을 걸어 주기도 하셨는데, 마음으로부터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오늘의 정창영 사장님이 있기까지, 아버님의 가름침과 구미의 정신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는데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 선친께서는 구미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 대통령이 고향이라는 점을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역사적으로 인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선산 출신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야은 길재 선생,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비롯해 구한말 의병대장 허위 선생님 등 구미출신 훌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고향의 명예를 드높이는 꿈을 심어주기 위해 그리하신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구미는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구미인에게는 조상 대대로 멸사봉공의 정신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애국애족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 또한 공직생활 30여년 동안 멸사봉공과 애국심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일했는데 이것이 구미 정신이고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3) 감사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감사맨으로 사무차장을 거쳐 사무총장까지 오르셨습니다. 또한 국회와 청와대에도 근무하시면서 국정 전반을 폭넓게 경험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어떤 곳이며, 무슨 일을 하셨나요?

- 흔히들 감사원하면 암행어사와 같이 비리를 찾아내고 벌주는 무서운 기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에 소속된 기관입니다. 행정부, 정부투자기관, 지방자치단체 전부와 그 산하 공기관에 대한 회계삼가와 공직자들의 직무감찰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와 법원에 대해서도 회계감사를 하지요.
저는 감사원 사무총장 채직시, 부정비리 적발 및 처벌보다는 잘한 점을 찾아내 포상하거나 제도화하고 문제점은 미리 발견하여 초치하는 '감사는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데 역점을 투었습니다. 이 같은 혁신적인 업무 방식으로 피감기관이나 외부에서 감사원의 개척자, 아이디어 뱅크라는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회와 청와대에 파견돼 6여년을 보낸 덕분에 국정 전반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원에서 경험했던 국정전반에 대한 통찰력과 국정의 컨설턴트로서의 업무자세가 나중에 코레일 사랑이 되어 공기업을 경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코레일 사장을 역임하시는 동안, 정시운행률과 안정성 부문 세계 1위를 하셨고 세계적인 경영평가기관(영국 CRRA)으로부터 공기업 사상 최초로 경영혁신 부문 3위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2013년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창조경제 이러에 선정되기도 하셨는데 코레일 사장으로 있는 동안 이룬 성과와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사실 재임기간이 1년 4개월이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 혼자만 있고 코레일 3만 5천여 직원들의 땀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시운행률 1위, 안전성부문 1위, KTX 브랜드 가치 제고 등은 코레일이 세계적 수정의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영혁신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평균 500억원이던 적자 개선폭을 작년에 1,633억원으로 세 배이상 줄여서 향수 흑자경영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공기업으로서 공적인 역할도 과감하게 했습니다. 종소기업명품마루를 서울역에 설치해서 중소기업들과으 동반성장을 도모했고, 노숙인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노숙인 자활지원에도 앞장섰습니다.
또한 서울역 최초로 여성역장을 임명했으며 노사관계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철도관광객이 45% 증가했는데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모범사계가 될 만합니다.
5개 관광벨트 열차와 ITX-청춘 도입은 기존에 있는 인푸라에 관광을 접목시켜 새로운 고북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제가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보고요 두 번째는 자율과 창의성에 기반한 정창영식 소통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봅니다.


5) 구미역사 상가 명도소송 1심 판결에서 코레일이 승소하였는데요, 문제 해결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앞으로 구미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신것이 있으신지요?
- 상가 운영자가 재임대를 하면서 2중, 3중의 계약문제가 얽혀 있어 빠른 시일 내에 문제해결이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빠른 시일내에 해결하지 못했던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가 명도소송에서 코레일이 승소하였고 지하주차장은 우선적으로 완공이 될 예정입니다. 구미역사도 최종심 판결까지 끈나면 조만간 준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주차장 지상 1천 5백 평에 야외공연장을 설치하고, 구미 역사 옥상 8백 평에는 예술문화단체들이 사용하는 시설을 만든다면 구미역이 구미의 문화예술센터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계약문제로 다소 지체되고는 있습니다만, 이미 1심 판결도 끝이 났으니 머지 않아 구미역사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6) 형과 동생이 동시에 행정고시 24회에 합격하셨습니다. 해방 이후 처음 있는 진기록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집안사정 속에서 행정고시에 응시하시게 된 동기와 합격비결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지요?

-군복무를 마치고 왔는데 당시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럽이 부도가 나집안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장남의 책임감과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선산 지역의 과거합격자 배출 전통을 말씀하셨던 영향으로 공직 진출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생이 먼저 행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2차례 응시경험이 있던 동생의 도움이 컸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 짧은 시간에 합력했는데 무엇보다 공직에 대한 목표가 뚜렷햇고 한번 결심하면 흔들리지 않고 매진하는 끈기와 집중력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7) 사무총장과 코레일 사장 등 큰 공직을 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감사원 근무중에 감사원의 거의 모든 보직을 거쳤고 국회와 청와대에도 파견근무를 했습니다. 큰 일을 맡기려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하는구나 하는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택인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국정 전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골고루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큰 그림을 그리고 능력과 균형감각, 올바른 판단력, 추진력이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한편 중앙에서만 일했던 탓으로 고향인 구미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그동안 공직자로 쌓은 국정경험과 지혜를 새로운 구미를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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